티스토리 뷰
‘헤레디터리(Hereditary)’는 죽음 이후 드러나는 가족의 숨겨진 진실과 함께, 대를 잇는 공포와 운명을 그린 심리 호러 영화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귀신 이야기나 충격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유전과 가족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정서적 파괴와 불가항력적 공포를 정교하게 직조한다. 본문에서는 ‘헤레디터리’가 구축한 공포의 정체, 가계와 운명의 얽힘, 그리고 유전이라는 이름의 숙명에 대해 분석한다.
죽음 이후 시작되는 계승의 비극
‘헤레디터리(Hereditary)’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애니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애도의 시간이지만, 그 속에는 어머니와의 뒤틀린 관계, 감정적 거리,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곧, 이 죽음이 단순한 가족사적 사건이 아닌, 더 깊고 어두운 무언가의 시작이었음을 영화는 예고한다.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공포’를 외부에서 발생하는 위협이 아니라, 내부에서 피어나는 균열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애니 가족의 불행은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 사고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조직되며 점점 설명할 수 없는 공포의 실체를 드러낸다. 딸 찰리의 죽음, 아들 피터의 무기력, 애니의 정신적 불안은 모두 이 가계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계승된 힘’의 흔적으로 해석된다. 감독은 시종일관 차분한 카메라 워크와 조명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미니어처 집과 실제 공간이 겹쳐지며,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조종되는 인형처럼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이 연출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으며, 이미 짜여진 계획 속에 있다는 무기력함을 강하게 전달한다. 결국 영화는 한 가족의 파멸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의지란 환상일 수 있으며,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단지 유전자나 재산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두려움, 억압, 감정의 방식, 심지어는 파괴적 운명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유전’이란 단어는 생물학적 설명을 넘어선, 존재론적 저주를 의미한다.
유전과 저주의 혈통, 가족이라는 굴레
‘헤레디터리’는 유전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통해, 공포의 정체를 개인이 아닌 ‘계보’로 확장시킨다. 애니의 가족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우연이나 사고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중반 이후로 진입하면서 그것들이 모두 연결된 의식과 의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애니의 어머니는 비밀스러운 종교적 집단과 연관이 있으며, 찰리의 몸을 의식적으로 봉헌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애니는 자신도 모르게 이 계획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가족 구성원들은 차례로 이 저주에 휘말린다. 이 설정은 ‘개인이 가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억압과 반복, 회피할 수 없는 결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는 애니의 무의식 속 분노와 불안, 자녀에 대한 양가감정을 드러내며, 부모의 상처가 자녀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특히 애니가 아들에게 “나는 너를 원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 폭발을 넘어서,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존재가 강제로 이어받은 운명에 대한 무언의 선고처럼 들린다. 피터는 이야기 후반부에 이르면 자기 존재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한다. 그의 몸은 다른 존재의 그릇이 되고, 그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린다. 이 장면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사라진 자리, 즉 공포가 시작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헤레디터리’는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가 때로는 파괴적일 수 있음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산이 얼마나 복잡한 방식으로 계승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공포는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그 ‘피’ 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력한 계승자들, 사라지지 않는 이름들
‘헤레디터리’는 피를 나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족이라는 연결이 때때로 축복이 아닌 저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낯설고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공포의 형식을 빌리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태어남, 벗어날 수 없는 가계, 반복되는 감정의 상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운명’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이름을 잃는다. 그는 한 인물이 아니라, 어떤 의식의 수단, 집단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 장면은 인간 존재의 개인성이 완전히 해체되는 지점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자 결론이다. ‘헤레디터리’는 결코 큰 소리로 공포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다가오는 침묵과 혼란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리고 말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 집안에, 우리 피 속에 흐르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공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계의 한 가운데, 기억의 바닥, 가족사진 속 오래된 얼굴에 숨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