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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리폼드(First Reformed)’는 깊은 내면의 고통과 시대의 불안,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정제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 목회자가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며, 점차 스스로의 존재와 믿음, 세상과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종교적 상징성과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밀도 높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던지는 신념의 의미, 구원과 파멸의 경계, 그리고 현대 사회 속 종교적 고독에 대해 분석한다.

영화 퍼스트리폼드 관련 사진
영화 퍼스트리폼드 관련 사진

믿음이라는 고독, 질문으로 가득 찬 사제

‘퍼스트 리폼드’는 한 목회자의 일기 형식을 통해 내면의 독백과 시대적 혼란이 교차하는 과정을 정제된 미장센으로 풀어낸 영화다. 주인공 에른스트 톨러는 미국 뉴욕주의 작은 개신교 교회의 목회자다. 그는 과거에 아들을 군에 보내 잃은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며, 그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신을 향한 믿음을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그의 주변은 점차 믿음을 시험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톨러는 교회에 찾아온 한 환경운동가 미카엘과의 상담을 통해 큰 충격을 받는다. 미카엘은 지구의 종말과 인간 문명의 파괴를 예견하며, 아이를 이 세상에 낳는 것은 죄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세상은 그를 외면한다. 이 만남은 톨러에게 기존의 믿음이 과연 진실을 말해주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만든다. 톨러는 점차 전통적인 종교 관념을 유지하는 주변 환경과 자신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 사이에서 극심한 균열을 겪는다. 그는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점점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려는 욕망을 품기 시작하고, 종교적 언어 대신 윤리적 선택이라는 개념을 더 깊이 탐색하게 된다. 영화는 그의 혼란을 외부의 드라마틱한 사건보다는, 반복되는 일기 쓰기와 묵상, 고요한 공간의 사용, 차가운 색감의 화면으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 모든 구성 요소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많은 질문을 동반하는지를 관객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신념의 균열, 구원과 절망 사이의 흔들림

‘퍼스트 리폼드’는 신념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통해, 진실을 추구하려는 자의 외로움과 그 결기가 어떻게 파멸과 구원이라는 두 갈래 길로 나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톨러는 자신의 과거와 신의 침묵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개인의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한 윤리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교회가 거대 자본과 유착되어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교회가 과연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퍼스트 리폼드 교회는 상징적으로 ‘작고 오래된 진실’의 공간이고, 메가 처치는 ‘현대적 시스템과 타협한 믿음’의 공간이다. 이 대비는 곧 신념과 현실, 순수성과 타락의 이분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톨러는 점점 미카엘의 절망에 동조하게 되며, 그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한다. 그는 상징적으로 미카엘이 남긴 폭탄조끼를 착용하고, 환경 파괴 기업의 후원을 받는 교회 행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절망이 아니라, ‘신이 침묵하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실험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파멸적 충동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결말에 등장하는 매리와의 만남은 상징적 전환점이 된다. 톨러는 죽음을 향한 의식을 멈추고, 그녀를 껴안는다. 이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며, 이 장면에서 구원은 이성이나 신념이 아니라, 인간의 체온과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들이 서로를 껴안는 그 순간, 화면은 암전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참을 멈춘 채, 둘의 포옹을 정지된 듯한 상태로 보여준다. 이 연출은 시간의 흐름조차 멈춘 듯한 느낌을 주며, 톨러가 마지막 순간에 진실로 원했던 것이 파괴가 아닌 ‘연결’이었음을 암시한다.

 

고요한 전환, 믿음의 또 다른 이름

‘퍼스트 리폼드’는 전통적인 종교영화나 구원 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믿음의 의미를 되묻는다. 톨러는 끝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얻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파괴와 구원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신념은 때때로 극단을 향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극단을 멈추게 하는 것이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구원은 계시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껴안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 결국 톨러는 자신의 무너짐을 통해,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질문하며 누군가를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신념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처럼 흔들리며, 그 흔들림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의 증거라고. 마지막 포옹은 그 어떤 설교보다 강한 메시지를 품는다. 그것은 삶을 끊어내는 순간이 아닌, 다시 살아가기로 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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