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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은 철학자 니체가 말에게 매달려 울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인간 존재의 무게와 고통, 그리고 삶의 반복성과 침묵 속 정서를 철저하게 응시하는 영화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세계 속에서 한 노인과 그의 딸, 그리고 말 한 마리가 견뎌내는 삶의 흔적을 통해, 이 작품은 언어보다 더 강렬한 고요와 침묵으로 존재를 사유하게 한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드러내는 반복과 소멸, 정지된 시간의 철학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정지된 세계의 무게와 고통
‘토리노의 말’은 영화라기보다는 철학적 수행에 가까운 체험이다.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마부가 학대하는 말을 껴안고 울다 정신이 무너졌다는 에피소드를 짧게 소개한 후, 그 말의 운명에 대한 상상으로 전개된다. 이후 영화는 6일 동안의 시간을 통해 한 노인과 그의 딸이 살아가는 폐허와도 같은 삶을 응시한다. 이 작품은 서사적인 전개나 드라마틱한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 인물도 단 셋, 배경도 외딴 시골의 바람 부는 황무지. 그러나 이 미니멀한 구조 속에서 삶의 본질, 인간 존재의 조건, 그리고 모든 것의 끝에 다다르는 감각이 묵직하게 배치된다. 카메라는 인물의 동작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물을 길어 오는 무거운 발걸음, 말에게 건네는 한 그릇의 사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며, 단지 버틴다. 그러나 그 ‘버팀’ 자체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하루하루가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무너진다. 물은 말라가고, 바람은 세지고, 음식은 줄어들고, 말은 움직이길 거부한다. 결국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그러나 명백하게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과정을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은 관객에게도 일종의 고통이자 숙고를 유도하는 체험이 된다.
반복과 침묵 속의 존재
‘토리노의 말’은 감정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삭제한 자리에 남는 침묵, 정적, 반복이 진짜 감정을 만든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말하지 않는다. 단 두어 마디의 대사만이 존재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바람 소리, 숨소리, 걷는 발자국으로 채워진다. 딸은 아침에 아버지의 옷을 입히고, 감자를 삶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먹는다. 같은 식단, 같은 행동, 같은 리듬. 이러한 일상은 초반에는 지루함처럼 느껴지지만, 점차 불안으로 변한다. 이 반복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감자는 썩고, 불은 꺼지고, 말은 움직이지 않는다. 존재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삶은 지속 불가능해진다. 이 반복은 단순한 리듬이 아닌 철학적 선언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을 수도 있으며, 의미란 외부적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인공들은 절망하지 않지만, 희망도 품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삶을 반복할 뿐이다. 그 반복의 끝에는 암흑이 있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는 순간이다. 딸은 등불을 켜려 하지만, 빛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둠은 단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가 완전히 닫히는 상징이다. 그들은 더 이상 감자도 먹지 못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침묵 속에서 완전한 정지에 도달한다. 이 장면은 종교적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창조가 끝났고, 인간은 버려졌다. 그러나 영화는 어떤 종교적 해석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고통조차 없는 고요한 절멸. 이것이 바로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말해지지 않는 진실, 사라지는 존재
‘토리노의 말’은 관객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 공백이 더 많은 의미를 던진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쇠약해지고, 고립되고, 무너진다. 삶은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 채 지속되며, 감정이라는 것도 사실은 물처럼 마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위대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비극적이지도 않다. 단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서서히 그 자리를 비워간다. 이 과정에는 분노도, 눈물도, 절규도 없다. 대신 무겁고 조용한 포기만이 있다. 그러나 이 포기 속에, 어쩌면 가장 깊은 사유가 있다. ‘토리노의 말’은 말한다. 세계는 끝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반복의 마모로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그 끝을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끝 앞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긴 침묵으로, 긴 화면으로, 우리 안의 무언가를 흔들어 깨운다. 그 흔들림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려는 유일한 언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