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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두 남성의 사랑과 그 감정의 각성을 담은 영화다. 첫사랑의 찬란함과 아픔,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유려한 자연 풍경과 섬세한 감정 묘사로 사랑의 보편성과 고유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그려낸 첫사랑의 본질, 이름과 자아의 관계, 그리고 감정이 남긴 흔적들에 대해 분석한다.
햇살 아래 피어난 감정의 이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1983년 북부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17세 소년 엘리오와 미국인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의 변화와 깊이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한적한 여름날의 나른함 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엘리오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처음에는 혼란과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지적이고 감수성 강한 그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올리버를 향한 감정에 점차 매혹된다. 올리버는 자유롭고 여유 있는 태도로 엘리오를 대하지만, 그의 감정 또한 점차 억눌린 열망에서 확신으로 변화해간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감정의 선명함보다 그 감정이 피어나는 ‘시간과 공간’에 있다. 촬영지인 크레마 지역의 자연, 고풍스러운 저택, 느리게 흐르는 일상은 모두 감정이 자라기에 최적의 배경을 제공한다. 인물들은 그 속에서 급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멈춰 있는 듯한 시간 속에서 감정은 천천히 숙성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통해 경험하는 것은 단지 사랑이 아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감정은 성적 정체성의 자각을 동반하고, 자신의 취향, 언어, 몸, 감정의 결까지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첫사랑은 곧 ‘자기 발견’의 통로이며, 그 감정의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름을 나누는 사랑, 존재의 전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제목은 이 영화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여하며, 상대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장시키는 감정의 전이를 경험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라는 대사는, 단순한 애칭을 넘어선 정체성의 공유이자 융합이다. 이 대사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 감정적 친밀성을 전제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단지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의 일부분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그렇게 서로를 ‘나’처럼 여기고, 감정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 관계는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그 비극은 파괴가 아니라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올리버는 돌아가고, 엘리오 혼자 남는다. 그러나 엘리오가 겪은 감정은 일방적인 상실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깊은 과정으로 작용한다. 이별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한 여름의 사랑이 지나가야 할 필연적인 계절의 흐름처럼 그려진다. 엘리오의 부모 역시 이 관계를 존중한다. 특히 아버지의 대사는 영화의 정서적 핵심을 이룬다. 그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마음을 닫지 말거라.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상실조차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사랑이란 감정의 완성은 꼭 지속이나 결혼이 아닌, 감정 그 자체의 진실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감정의 진실성은 영화의 리듬, 조명, 음악, 대사 속에 녹아 있다. 연기 역시 인위적이지 않고, 실제 여름날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럽다. 모든 요소가 감정의 깊이를 침범하지 않으며, 영화는 ‘사랑을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드문 작품으로 자리잡는다.
끝나지 않은 사랑, 기억이라는 지속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결코 고백이나 연애의 성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그 감정이 지나간 뒤에도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벽난로 앞에 앉은 엘리오의 클로즈업은 침묵 속에서 이별과 사랑을 곱씹는 인물의 내면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감정의 ‘사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정제되어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엘리오의 눈물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기도 하다. 첫사랑은 종종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이 감정을 기억하는 방식에 깊이를 더한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다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감정은 엘리오의 일부로 남아,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렇게 감정이 얼마나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모습이든, 누구에게든, 한 여름의 열기처럼 분명히 다녀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추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다. 그 여름의 끝에, 엘리오라는 소년은 조금 더 성장해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감정을 함께 겪은 누군가처럼, 조용히 그를 응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