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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화 ‘이터널스(Eternals)’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불사의 존재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과 감정을 배워가는지를 조명하는 서사다. 영생이라는 판타지적 설정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유한성과 도덕성, 감정의 가치를 중심에 두며,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본문에서는 ‘이터널스’가 보여주는 영생의 무게, 인간됨의 의미, 그리고 신화와 정체성 사이의 갈등을 분석한다.

영화 이터널스 관련 사진
영화 이터널스 관련 사진

불멸의 존재가 인간을 배운다는 역설

‘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담아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면서도, 그 중심을 ‘불멸의 존재가 인간을 이해해가는 과정’에 둔다. 이터널스는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온 존재들이지만, 정작 인간성과 감정에는 서툴고, 그 안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들은 아리셈이라는 셀레스티얼의 명령에 따라 지구에 파견되어 ‘데비안츠’라는 괴생명체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수호자나 전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사랑과 이별, 죄책감과 의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로 그려낸다. 즉, 영생의 삶이 주는 초월성이 아닌, 인간성을 ‘학습하는 존재’로서의 초인이 중심이다. 이터널스는 각기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로 구성된다. 세르시는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려 하며, 드루이그는 인간 간의 폭력과 갈등을 보며 강제로라도 평화를 이루려 한다. 킹고는 인간 세계에서 스타로 살아가며 인간을 흉내 내는 삶을 즐기고, 파스토스는 기술과 창조의 관점에서 인간을 돕는다. 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는 이터널스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성을 배우고 감정을 겪는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갈등은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스스로 판단할 것인가’에 있다. 아리셈은 지구가 새로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키기 위한 씨앗일 뿐이며, 인류는 그를 위한 ‘재료’라고 말한다. 이에 맞서 이터널스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창조주에게 반기를 들고, 그 선택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스스로 인간성을 택한 상징적 행위로 읽힌다. 이러한 전개는 영생이라는 설정을 통해 오히려 유한한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더 명확히 부각시킨다. 죽지 않는 존재들이 오랜 시간 속에서 느낀 것은, 영원보다 찰나의 감정이 더 소중하다는 깨달음이다. ‘이터널스’는 불사의 존재들이 결국 ‘인간’이 되기를 선택하는 역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영생의 고독과 도덕적 선택의 무게

‘이터널스’는 초월적 존재들의 이야기지만, 그 내면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영생이라는 메인 키워드는 이들에게 힘과 지식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장벽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반복되는 상실, 인간과의 이별, 수많은 문명의 멸망을 목격한 이터널스는 점차 ‘삶의 무의미함’이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길가메시는 타인의 기억을 감당하지 못하는 테나를 지켜내며, 사랑이란 보호의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이카리스는 사명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세르시와 적대하게 된다. 그는 아리셈의 계획을 지지하면서도, 끝내 세르시를 해치지 못한다. 이카리스의 선택은 복종이라는 신념과 사랑이라는 감정 사이에서 갈라지는 정체성의 분열을 상징한다. 영화는 이처럼 영생이라는 초월적 시간 속에서도, 윤리적 판단과 도덕적 선택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초월적 존재조차 자신이 속한 세계에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책임은 단지 힘의 크기나 명령의 정당성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영웅의 전통적 개념을 해체한다. 이터널스는 슈퍼히어로지만, 신격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실수와 후회, 침묵과 방관이 역사 속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스스로 반성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절대자가 아니며, 도덕적 고민을 지닌 존재들이다. 이는 초능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도덕성과 공감능력이야말로 인간됨의 본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이터널스’는 거대한 우주적 서사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다. 죽지 않는 존재가 결국 ‘죽음을 수용하는 인간’을 닮아갈 때, 그들은 비로소 존재의 목적을 자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정의한다’는 고전적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원함 속에서 피어난 유한한 감정의 가치

‘이터널스’는 마블 유니버스라는 틀 안에서, 드물게 존재론적·도덕적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이 영화는 강함보다 섬세함, 불사보다 공감, 명령보다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수천 년을 살아온 이터널스가 결국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가치를 초월적 존재조차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생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축복일 수 있다. 반복되는 상실, 감정의 무뎌짐, 목적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이터널스’는 그 의미의 핵심이 바로 사랑, 공감, 희생 같은 인간적인 감정과 선택에 있음을 조용히 말한다. 결국 이터널스는 자신들의 창조주에게 등을 돌리고, 인간과 함께하는 길을 택한다. 그것은 신적 존재의 반역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경의이다. 이 작품은 강한 자의 책임이 아닌, 감정의 깊이로부터 비롯된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성을 이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터널스’는 말한다. 불사의 존재에게도 감정은 낯설고,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그 모든 갈등을 겪고도 인간 편에 서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신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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