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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Hereditary)’은 단순한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 세대를 넘어 전이되는 상처와 분열, 정체성의 해체를 극도로 심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공포영화다. 공포의 진원지는 귀신이 아니라, 피로 묶인 관계의 억압과 상속받은 고통이다. 본문에서는 가족 내 감정의 누적, 상실과 죄책감의 순환, 그리고 공포가 어떻게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다.

    영화 유전 관련 사진
    영화 유전 관련 사진

    상속된 비극, 침묵의 가계

    ‘유전’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애니(토니 콜렛)는 감정이 무디고 거리감 있는 어머니에 대해 모호한 슬픔을 드러낸다. "그녀를 알았던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하는 애니의 태도는 이 가족의 단절된 정서적 유산을 암시한다. 이 장례는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가족 서사의 뚜껑이 열리는 시작이다. 가족은 영화 초반부터 기묘한 침묵에 휩싸여 있다. 겉보기에는 기능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 누적된 갈등, 애도되지 못한 상실이 얇은 막처럼 얹혀 있다. 애니의 딸 찰리는 사회적 교감이 부족하고, 아들 피터는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내면에 분노와 혼란을 품고 있다. 이 가족은 감정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스스로 인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단절을 극단적인 사건들로 드러낸다. 찰리의 죽음은 피터의 손에 의해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이 사건은 가족 구성원들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찰리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애니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피터는 죄책감 속에 자아를 갉아먹는다. ‘유전’은 이처럼 공포를 외부의 위협으로 그리지 않고, 가족 안에서 쌓여가는 감정의 불균형과 억압으로 형상화한다. 감정이라는 메인 키워드는 이 영화에서 곧 파괴의 도화선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감정, 혹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감정. 그 모순된 감정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유전이라는 제목은 단지 육체적 특징이나 병의 대물림이 아니라, 감정적 체계의 전이이기도 하다.

     

    감정의 유전, 존재의 해체

    ‘유전’이 강렬한 이유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가 철저히 '정서적'이라는 점이다. 애니는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고, 오빠는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 이 가계는 죽음과 광기로 얼룩져 있으며, 그것이 마치 필연처럼 자식에게 전달된다. 애니는 자신의 딸 찰리를 어머니가 키우도록 내버려뒀고, 그 결과 아이는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닌 채 성장했다. 이처럼 감정의 왜곡은 자녀에게 직접적 영향을 준다. 애니는 무의식중에 피터를 거부하고, 이를 꿈속에서 고백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나도 원한 게 아니었다"며 자신의 모성에 대해 고백하지만, 이미 피터는 감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이 장면은 모성과 애착, 그리고 감정의 유전이라는 문제를 냉혹하게 보여준다. 공포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점차 형상화되지만, 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의지할 수 없는 혈연 관계’다. 가족은 보호의 울타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감정적 폭력이 은밀히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피터가 정체성 혼란과 환각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은, 감정적 지원 없이 자라난 개인이 어떻게 자아를 상실하는지를 상징한다. 결국 ‘유전’은 한 가정의 해체기를 그리고 있지만, 더 나아가 한 개인이 어떻게 ‘자기 자신’이라는 구조를 상실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공포는 누가 날 쫓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몰라지는 데서 비롯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피터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떤 운명을 갖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더 이상 ‘피터’가 아니다. 그는 다른 존재에게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신격의 매개체가 된다. 그것은 단순한 빙의가 아니라, 감정의 계승이 낳은 종말이다. 이 무력한 끝은 우리가 종종 가족 안에서 느끼는 '나는 누구의 감정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깊이 연결된다.

     

    사랑과 공포, 같은 유전자

    ‘유전’은 단지 무섭고 기묘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복잡한 감정, 보호와 구속, 유대와 억압, 애정과 증오 사이의 흐릿한 경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감정은 단절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일수록 더욱 강하게 다음 세대로 스며든다. 애니는 결국 어머니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자신의 분노와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아이에게 그것을 투사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관계를 파괴한다. 피터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죄책감과 공포 속에서 자아를 잃는다. 이 둘의 끝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의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묻고 또 묻게 된다. 감정은 정말로 유전될까? 나의 고통은 내 부모의 고통이었고,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은 ‘유전’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공포는 언제나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곳, 가장 사랑해야 할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감정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그것은 유전이 되고, 구조가 되며, 결국 공포가 된다. ‘유전’은 그 사실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마주하자고 말하는 영화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리를 끊는 일은 누군가의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