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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Once)’는 더블린의 거리에서 만난 남녀가 음악을 통해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대사보다 노래가 많은 이 영화는 감정을 말하지 않고도 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음악이 어떻게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구축하는 음악적 서사, 인물 간의 교감,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감정의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거리에서 만난 두 개의 음표
‘원스’는 거창한 줄거리나 극적인 전개 없이, 아주 작고 느슨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두 인물—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자와 꽃을 파는 동유럽 출신의 여자—는 우연히 만난다. 그러나 이 만남은 우연을 넘어선다. 둘은 음악이라는 매개로 자연스럽게 엮이기 시작하고, 서로의 노래를 듣고, 함께 연주하고, 노래 안에 감정을 담아내며 관계를 이어간다. 영화의 배경은 더블린의 거리와 좁은 방, 악기 가게, 녹음실 같은 일상의 공간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공간은 두 사람의 감정이 흘러드는 곳이자, 음악이 태어나는 장소가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의 고백을 말이 아닌 ‘노래’로 대신한다는 점이다. 특히 대표곡 ‘Falling Slowly’는 두 인물이 처음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을 상징하며, 이후 모든 감정의 출발점이 된다. 말보다 노래가 앞서는 이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강력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나 사랑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노래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영화의 태도는, 말로는 미처 다 닿지 못하는 정서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며든다.
노래로 이어진 감정의 선율
‘원스’는 감정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대사보다 음악으로 풀어내는 영화다. 주인공 남자는 과거 연인에게 상처를 받고, 그 감정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살아간다. 여자는 딸을 키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마음속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을 통해 감정이 흘러가고, 그것이 관계의 형식이 된다. 노래는 이들에게 감정을 정리하는 수단이자, 고백의 도구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하며, 특히 듀엣 장면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호흡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로 마주 보며 연주하는 장면은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장면보다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감정이 행동보다 앞서 흐르는 영화만의 미학이다. 영화 후반,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려 하고, 여자는 여전히 더블린에 남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는다. 현실적 제약과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관계가 실패했거나 미완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통해 서로를 진심으로 만났다는 그 경험 자체가, 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조용히 전한다. 이 영화의 사랑은 전형적인 로맨스가 아니다. 고백도 없고, 확실한 결말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정제된 감정과 무게 있는 침묵이 있다. 서로를 바꾸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었으며,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감정은 오래 남는다.
머물지 않은 감정, 멜로디로 남다
‘원스’는 짧은 시간 동안 만난 두 사람이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영화는 감정이 반드시 영속적이어야 하거나, 관계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부정한다. 어떤 감정은 그 순간 충분히 진실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온전히 존재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남긴 것은 말이 아닌 음악이다. 음반 속에 담긴 노래는 두 사람의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관객에게 그 감정을 공유하는 창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여자의 집 앞에 피아노를 선물하고 떠난다. 그녀는 연주하지 않은 채 웃고, 그는 떠나는 길에 노래를 듣는다. 그들은 함께 있지 않지만, 이미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감정이 머물렀던 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은 노래처럼 흐르고, 그 감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 울려 퍼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