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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Son of Saul)’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시체 처리를 담당하는 유대인 죄수 사울이, 죽은 소년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를 그린 영화다. 극단적인 제한 시점과 클로즈업을 통해 구현된 이 작품은 감정과 폭력의 거리를 철저히 제한하면서도, 그 안에 응축된 절망과 인간성의 마지막 끈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본문에서는 사울의 시선이 어떻게 감정의 통로로 작동하며, 침묵과 제한된 거리 속에서 감정적 지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분석한다.

사울의 아들 영화 관련 사진
사울의 아들 영화 관련 사진

보지 않지만 느껴지는 감정의 폭력

‘사울의 아들’은 시선의 영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사울의 뒷모습 혹은 얼굴에 밀착하여 따라간다. 배경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점은 사울의 시야에만 국한된다. 이 제한된 시각은 곧 감정의 제한을 의미한다. 관객은 수용소의 전경을 보지 못하고, 죽음의 구체를 직접 목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로 인해 영화는 더욱 끔찍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보이지 않기에, 상상은 더욱 극대화된다. 들리는 비명, 쿵쿵 울리는 소리, 사라지는 사람들, 번져가는 핏자국. 감정은 이 ‘보이지 않음’의 틈에서 살아난다. 사울은 이러한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죽음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 무감각 속에, 단 하나의 감정을 밀어 넣는다—한 아이를 매장하려는 의지. 그 아이가 실제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사울은 ‘아들’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비인간적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감정의 증거가 된다. 영화는 이처럼, 한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파괴되고, 동시에 어떻게 마지막까지 지켜질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사울의 선택은 생존 전략이 아니라 감정적 저항이며,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무언가’를 향한 몸부림이다.

 

시선의 프레임, 감정의 감옥

감정이라는 메인 키워드는 이 영화에서 극도로 제한된 형태로 나타난다. 사울은 웃지 않고, 울지 않으며,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며, 그 눈빛은 무너진 내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감정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의 손이 닿는 대상, 그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시신’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그가 아이의 시체를 손에 들고 수용소 안을 돌며 라비를 찾고, 묘지를 구하고, 시체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여정은 언뜻 보기에 광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집착은 실은 깊은 감정적 진심의 결과다. 모든 인간성이 말소된 공간에서, 사울은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죽음을 정리하는 대신, 하나의 죽음을 ‘기억’하려 한다. 이때 영화는 시선을 제한함으로써, 관객에게 ‘감정적 동일시’가 아닌 ‘감정적 거리 두기’를 유도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감정에 빠지기보다는, 그 감정을 억누르는 사울의 내부를 상상하게 된다. 이 거리감은 감정을 더 명확하게 만들고, 그가 끝내 아이의 시신을 지키려 할 때, 그 무언의 행동이 전부의 감정을 함축하게 만든다. 그리고 감정은 마지막 순간에 터지지 않는다. 영화는 절대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감정을 삼킨다. 그 침묵이야말로, 진짜 지옥이다. 그 지옥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며, 사울은 그 감정의 중심에 홀로 선다.

 

감정의 마지막 불꽃, 인간성의 이름으로

‘사울의 아들’은 가장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지켜내려는 시도를 그린다. 사울이 택한 행위는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그 무엇도 구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이 가진 마지막 저항이다. 사울은 울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침묵에서 운다. 사울은 분노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눈빛에서 분노를 느낀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정을 전달하는 역설을 구현하고, 그 방식은 오히려 관객의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든다. 영화의 마지막, 사울은 낯선 소년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 짧은 순간은 감정의 회복이라기보다는, 감정의 마지막 숨결이다. 그 미소는 구원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여전히 사람’으로 남으려는 선택의 표정이다. ‘사울의 아들’은 감정의 격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떻게 망가졌고, 어떻게 끝내 지켜질 수 있었는지를 말 없이 들려준다. 그리고 그 감정은 관객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터져 나온다. 절제된 시선 속에 고여 있는 감정, 그것이 바로 인간성의 최후이자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유일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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