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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Melancholia)’는 지구 종말이라는 압도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우울과 불안, 존재의 공허를 내면 깊숙이 탐색하는 영화다. 거대한 재난을 앞두고 인간이 보이는 감정의 풍경을 치밀하게 해부하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파멸이 반드시 공포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해방이자 안식이 될 수 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 우울의 형상화, 그리고 죽음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영화 멜랑콜리아 관련 사진
영화 멜랑콜리아 관련 사진

종말 앞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진실

‘멜랑콜리아’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저스틴’, 두 번째는 ‘클레어’. 각각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이 두 장은 자매를 중심으로 세계의 종말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정반대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저스틴의 장면은 결혼식에서 시작된다. 겉보기에는 축복받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내내 불안정하고, 불편하며,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결혼식은 차갑고 형식적이며, 가족의 냉소와 이기심이 가득하다. 이 결혼은 행복의 서사가 아니라, 오히려 우울과 파국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기능한다. 저스틴은 점점 그 자리를 이탈하고, 결국 파티에서 벗어나 혼자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 밤하늘에 떠 있는 것이 바로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이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이 거대한 천체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스틴의 내면을 형상화한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의 멜랑콜리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세계와의 불화이며, 삶 자체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로 표현된다. 반면 두 번째 장면의 중심인물인 클레어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녀는 아들과 남편을 지키고자 하며, 삶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드러낸다. 그녀는 종말을 부정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파국이다. 이처럼 ‘멜랑콜리아’는 두 인물을 통해 감정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다양한 태도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 대비는 영화가 단지 재난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심연을 응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의 표면 아래 잠긴 우울의 세계

영화 속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단지 우주적 재난을 상징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물들의 심리, 특히 저스틴의 정신적 상태와 깊이 연결된다. 저스틴은 이미 영화 초반부터 정상적인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녀는 결혼식에서 웃지 않고, 섹스조차 무감정하게 수행하며, 다음 날 아침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는 마치 이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저스틴은 점점 평온해진다. 그녀는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정을 찾아간다. 이는 우울증 환자에게 외부 현실보다 내면의 혼란이 더 압도적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에게 멜랑콜리아의 접근은 재난이 아닌 해방이다. 파멸은 끝이 아니라, 고통에서의 해방이며, 오히려 삶보다 죽음이 더 확실하고 명료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클레어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남편이 과학적으로 ‘충돌은 없다’고 말해줄 때 안심하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도망칠 방법을 찾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침내 무너진다. 두려움은 점점 공포로 바뀌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다. 감정이라는 것이 일직선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 매우 인상 깊게 표현된다. 종말이라는 공통된 위기 앞에서도 인물마다의 반응은 다르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공포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평온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 감정의 역설을 영상으로 구현해낸다. 시각적 구성 또한 이를 더욱 강화한다. 초반부의 초고속 슬로우 모션, 결말부의 심연과도 같은 어둠, 그리고 멜랑콜리아의 청색은 감정의 차가운 무게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아름다운 파국, 차가운 평온, 소리 없는 공포가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며, 관객은 서서히 그 감정의 무중력에 빠져들게 된다.

 

끝의 시작, 고요한 수용

‘멜랑콜리아’는 결국 삶과 죽음, 공포와 해방, 희망과 절망 사이의 모든 감정을 껴안는 영화다. 종말은 도래하지만, 그 앞에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저스틴은 죽음을 마치 환영하듯 받아들이고, 클레어는 끝까지 발버둥치다 절망한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 마지막 장면, 세 인물이 함께 ‘마법의 동그라미’를 만들어 앉는 장면이다. 그 작은 구조물은 아무런 과학적 기능도 없지만,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준다. 그것은 아이에게 두려움을 덜어주려는 어른의 마지막 배려이자, 인간 존재가 끝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조용히 관찰하고,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것이 슬픔이든 평온이든, 공포든 무감각이든, 모두가 감정의 한 풍경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멜랑콜리아’는 말한다. 우리는 종종 파국을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그 파국 앞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풍경이라고.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인간은 가장 솔직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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