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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는 상실을 겪은 인물이 연극이라는 매개와 낯선 관계를 통해 감정을 마주하고, 조용히 회복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침묵과 거리, 말과 부재를 통해 인간 내면의 응어리를 조용히 풀어낸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이 제시하는 상실의 감정, 타인과의 조심스러운 연결, 그리고 치유의 리듬에 대해 분석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관련 사진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관련 사진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만든 빈자리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다.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가후쿠 유스케는 아내 오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는다. 그녀는 그에게 깊은 애정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남긴 채 떠난다. 유스케는 아내가 죽기 전, 그녀의 외도를 알게 되었지만 묻지 않았고, 그녀 또한 말하지 않았다. 이들의 침묵은 서로를 보호하려는 방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는 상실을 감정적으로 폭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침묵과 조심스러운 움직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정을 천천히 해체한다. 유스케는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체홉의 『바냐 삼촌』을 연출하게 되고, 낯선 도시에서 ‘말을 외우기 위해’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며 차를 몰고 다닌다. 이 반복적인 청취는 단순한 연습을 넘어, 남겨진 기억에 닿고자 하는 고요한 애도다. 히로시마에서 유스케는 미사키라는 젊은 여성 운전사를 만나게 된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단단한 그녀는 그를 묵묵히 태우고, 그의 말과 침묵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동반자가 된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지만, 그 말 없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 관계는 단순한 위로나 보상이 아니라, 감정을 흘려보내기 위한 통로로 작용한다. 영화는 시간을 무겁게 흐르게 둔다.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장면들, 움직이지 않는 얼굴들, 느리게 펼쳐지는 길과 음악. 이 모든 요소는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감정을 둘러싼 구조를 드러낸다. 그 구조는 ‘상실’이라는 낱말의 뒷면에 붙은 잔여물들—후회, 기억, 공백—로 채워져 있다.

 

상처를 드러내는 대신, 함께 견디는 방식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부재의 형태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오토의 죽음은 유스케에게 깊은 결핍을 남겼지만, 그 상처는 화려한 눈물이나 감정적 폭발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동안, 자신조차 몰랐던 감정의 덩어리를 조금씩 마주한다. 미사키와 유스케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핵심 구조를 이룬다. 둘은 말보다는 공유된 침묵으로 가까워진다. 미사키 또한 어릴 적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고, 그 트라우마를 말이 아닌 행위로만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과거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차에 앉아 달리는 동안 그 감정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체홉의 희곡 『바냐 삼촌』과 영화의 구조가 맞물리는 방식이다. 극중 인물들의 무력감과 포기, 삶을 감당하는 방식은 유스케의 내면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그는 배우들에게 언어가 아닌 감정을 요구하며 연출하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 유스케는 미사키와 함께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 폐가에 간다. 이곳은 그녀의 트라우마가 자리한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마주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유스케는 그곳에서 미사키에게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한 마디를 건넨다. 이 말은 사죄도 고백도 아닌, 함께 아파했어야 했다는 진심이다. 이 영화에서 치유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번의 마주침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치유란, 상처를 딛고 걸어가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감정이 무뎌지고, 그 감정을 스스로 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다.

 

길 위에서 이어지는 마음의 호흡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을 감정의 종착점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실을 품은 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유스케는 아내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미사키라는 타인을 통해 그 감정을 다시 조명하고,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 미사키는 붉은 차를 운전하고, 조수석은 비어 있다. 그 빈자리는 과거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미래의 동반자를 기다리는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삶의 방식이다. 상실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길 위에서 누군가와 조심스럽게 감정을 나누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그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다. 깊고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것은 삶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말보다 침묵, 드라마보다 일상, 치유보다 견딤—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만든 이 여정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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