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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은 18세기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세 여성의 권력 다툼과 그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을 독창적인 연출과 대사로 풀어낸 시대극이다. 권력을 쥔 자와 그것을 좇는 자, 그리고 이용당하는 자 사이에서 교차하는 감정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 아닌, 인간 내면의 결핍과 욕망을 드러낸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묘사하는 권력 구조의 유동성과, 인간 존재의 고립감, 그리고 관계를 통해 권력과 감정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영화 더페이버릿 관련 사진
영화 더페이버릿 관련 사진

왕좌 위의 여왕, 외로운 중심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은 형식적으로는 정통 시대극의 외형을 지녔지만, 실상은 고전적인 궁중 권력극의 문법을 전복한 작품이다. 영화는 앤 여왕과 그녀의 최측근인 사라 처칠,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하녀 출신 애비게일의 삼각 구도를 중심으로, 권력과 감정의 복잡한 밀고 당김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초반부터 여왕은 절대 권력의 중심에 있지만, 그 모습은 위엄보다는 허약하고 불안정하다. 통풍으로 고통받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결정 하나에도 타인의 지지를 갈구한다. 그녀는 지배자가 아닌 감정적 의존에 휘둘리는 존재로 묘사되며,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외롭고 불완전하다. 여왕의 곁에는 어릴 적 친구이자 실질적인 권력 행사자인 사라가 있다. 그녀는 여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국정을 좌우하고, 왕실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은 철저히 여왕의 애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기반이 흔들리는 순간부터 그녀의 세계도 위태로워진다. 이 틈을 타 등장한 인물이 애비게일이다.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입궁한 그녀는 생존을 위해 야망을 숨긴 채 천천히 여왕의 관심을 차지해간다. 처음엔 순응적이던 그녀는 점차 사라를 밀어내고, 여왕의 새로운 총애자가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승리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외로움’을 자초하는 길이 된다. 이렇듯 영화는 권력이 감정에 기대고, 감정이 권력을 흔드는 상황을 통해, 권력의 본질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인간적인가를 드러낸다. 여왕은 자신이 가장 높은 곳에 있지만, 오히려 누구보다 약한 존재이며, 애정과 관심을 향한 갈망이 그녀를 쉽게 조종당하게 만든다. 권력은 가장 위에 있는 이에게도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지배의 관계, 감정의 착취

‘더 페이버릿’은 권력이라는 메인 키워드를 감정의 복잡성과 연결시켜 탐구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권력을 원하지만, 그 방식은 각기 다르다. 사라는 여왕과의 오랜 우정을 기반으로 한 직설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택한다. 반면 애비게일은 겸손과 순종을 무기로, 내면에 감춘 야심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들의 방식은 상반되지만, 목적은 동일하다. ‘총애’는 곧 ‘생존’이자 ‘통치’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왕이 단지 조종당하는 피지배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안다. 그리고 그 권한은 두 여성 사이의 대결에서 무기처럼 사용된다. 그녀는 사라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끌리고, 애비게일에게 안식을 느끼면서도 불신을 거두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권력의 형태가 제도나 직위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감정은 권력의 다른 언어이며, 사랑과 애정, 질투와 두려움은 곧 정치의 도구로 작동한다. 사라와 애비게일의 싸움은 단순한 후궁 다툼이 아니라, 감정과 지위를 모두 걸고 벌이는 전면전이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된다. 사라는 추방되고, 애비게일은 여왕 곁에 남지만, 그 곁은 보호가 아닌 감정적 감옥이 된다. 여왕은 사라를 잃은 상실감 속에서 애비게일을 붙잡고, 애비게일은 자신이 선택된 존재라는 자각 속에서, 자유를 잃는다.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의존’이고, ‘권력’이 아닌 ‘구속’이다. 이처럼 영화는 권력의 중심을 물리적인 위치가 아닌, 관계의 역학 안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외로움’이 자리한다. 가장 강한 자도 감정의 갈망에 취약하며, 가장 약한 자도 감정을 무기로 삼아 상황을 바꾼다. 이 교차는 곧, 권력의 본질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총애받는 자의 슬픔, 관계의 잔혹함

‘더 페이버릿’은 총애와 권력, 감정과 생존이 얽힌 복합적 관계의 서사다. 영화는 우아한 시대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는 날것의 감정과 치열한 심리전, 그리고 고립된 인간의 잔상이 가득하다. 여왕은 결국 누구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받으면서도 외롭다. 사라는 모든 것을 잃고도 여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애비게일은 얻고자 했던 것을 얻었지만 공허함에 사로잡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왕은 애비게일의 머리를 무릎에 얹은 채, 자신의 애완 토끼들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애비게일이 이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지배되는 존재’가 되었음을 암시하며, 총애의 이면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관계는 권력의 가장 은밀한 무기다. 그리고 권력은 감정이 얽힐수록 더 불완전하고 위험한 형태로 작동한다. 영화는 그 점을 단호하면서도 우아하게 보여준다.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 선택되는 것, 가까이 있다는 것—이 모든 감정적 승리조차도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더 페이버릿’은 그렇게 말한다. 권력의 중심에는 늘 고독이 있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올라선 자리는 그만큼 외롭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정조차 이용해야 할 때,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의 마음을 잃어간다. 결국 남는 것은, 선택된 자의 이름이 아니라, 서로를 견딘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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