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더 넌(The Nun)>은 ‘컨저링 유니버스’의 기원을 밝히는 작품이자, 가장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공포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악령과의 대결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종교의 빛과 어둠, 인간의 믿음과 회의, 시각과 심리를 동시에 자극하는 미장센으로 퇴마라는 의식을 풀어냅니다. 루마니아의 고딕 양식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종교 미스터리 서사처럼 구성되며, 발락이라는 강력한 악령과 그것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적인 퇴마 의식 안에 담아냅니다.

영화 더넌 관련 사진

1. 퇴마의식의 신학적 재구성과 내러티브

<더넌>의 퇴마는 전형적인 오컬트 장르의 퇴마 장면과는 다르게, 실제 가톨릭 전통과 상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의식의 ‘의미’에 무게를 둡니다. 주인공인 버크 신부와 수련 수녀 아이린은 단순한 오컬트 전문가가 아니라, 신념과 죄의식,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들이 수행하는 퇴마는 단지 주문을 외우고 성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과거를 직면하고 믿음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성혈(Holy Blood)’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유물로 묘사됩니다. 이 유물이 악령 발락에게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단순한 마법적 요소가 아니라, 죄의 정화와 신의 자비라는 교리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성혈을 통해 ‘신성함’이 물리적 힘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퇴마 장면을 단순한 액션이 아닌 ‘구원’의 장면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아이린 수녀는 영화의 중반까지도 자신의 믿음을 완전히 확립하지 못한 상태였으나, 절정의 퇴마 장면에서 자신의 몸을 담보로 성혈을 발락에게 내뿜으며 ‘신의 도구’로 거듭납니다. 이는 곧 퇴마가 인간의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이며, 물리적인 퇴치보다 정신적인 구원이 먼저임을 강조하는 상징적 구조입니다. 그녀의 희생과 신념은 악령보다 강력한 방패로 기능하며,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강한 울림을 줍니다.

2. 화면 속 상징과 성스러움의 전복

<더넌>의 화면 연출은 상징과 상징의 충돌, 그리고 종교적 미장센의 전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퇴마 장면에서는 기독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상징물들이 고통과 공포의 도구로 바뀌며, 관객의 심리적 거부감과 불안을 끌어올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수녀의 형상을 한 악령 발락’입니다. 수녀는 일반적으로 정결과 자비의 상징이지만, 발락은 이 외형을 빌려 악의 절대성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교회와 수도원을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루마니아 수도원은 문을 닫고 외부와 단절된 채 내부에 악이 스며든 상태이며, 기도와 찬송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어둠이 서려 있습니다. 이는 종교 공간 자체가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대적 해석이며, 신앙의 힘은 개인의 확신 속에서만 발현된다는 주제 의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지하 납골당과 성혈이 숨겨진 장소는 모든 퇴마 장면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배경입니다. 불완전한 빛, 촛불과 그림자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진실’과 ‘속임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십자가의 그림자는 천장에 거꾸로 드리워지며 ‘성스러움의 전복’이라는 미학을 강화합니다. 성혈을 담은 유리병 역시 순수함과 깨지기 쉬운 신념을 상징하며, 결국 아이린이 입으로 이를 받아 삼키는 행위는 그녀가 믿음 자체를 내면화했음을 나타냅니다.

3. 사운드와 편집으로 완성된 공포의 형식

공포는 ‘무서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더넌>은 이 법칙을 철저히 따릅니다. 특히 퇴마 장면에서는 갑작스런 점프 스케어보다, 서서히 조여오는 침묵과 공명의 반복으로 심리적 압박을 강화합니다. 발락이 나타나기 전, 기도 소리와 낮은 베이스가 깔리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기도문이 라틴어로 반복될수록 관객은 의식에 동참하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카메라는 수평 이동보다는 수직 이동, 클로즈업보다는 로우 앵글과 하이 앵글을 반복해 신의 시선과 악령의 시선을 교차합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마치 신에게 구원받고 있는 듯한 착각과 동시에, 악의 존재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이중적 감정을 경험합니다. 퇴마 장면이 끝날 무렵, 성혈이 퍼지며 빛이 공간을 덮는 순간에는 오케스트라가 폭발하듯 울리며 악의 퇴장을 시각적‧청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퇴마를 절대적 승리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발락은 물리적으로 봉인될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이 악령은 이후 <컨저링2>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이는 악과 싸움이 단발적 사건이 아닌, 신념을 지키기 위한 반복적인 과정임을 상징합니다. 즉, <더넌>은 퇴마라는 의식을 단순한 클라이맥스로 소비하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인간의 숙명’으로 확장시킵니다.

4. 결론: 믿음과 공포의 경계에서

<더넌>은 단지 무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종교와 심리, 상징과 실체, 믿음과 공포 사이의 얇은 경계를 탐색하며, 퇴마라는 극적인 장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무의식을 건드립니다. 종교적 퇴마의식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전통이 아닌 ‘현재의 믿음’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성혈이라는 상징, 수녀의 악령이라는 반전, 침묵과 소리의 교차, 미장센의 활용까지 모든 요소는 공포를 구성하는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신념의 서사’를 엮는 도구입니다. 공포 영화로 시작해, 끝에 가서는 인간의 내면과 믿음을 되묻는 이 작품은 단순히 ‘무섭다’는 감정을 넘어서 ‘생각하게 하는 공포’를 완성합니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존재는 악령이 아니라, 믿음을 잃어버린 인간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