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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아웃 영화 속 인종차별의 철학적 은유

by jihoochaei 2025. 4. 10.

영화 <겟아웃(Get Out)>은 단순한 공포 스릴러를 넘어, 미국 사회에 만연한 '리버럴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사회비판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백인 진보층이 내세우는 위선적 환대와 이중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철학적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인종 문제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본문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철학적 장치를 활용해 인종차별을 시각화하고,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분석합니다.

‘겟아웃’의 설정과 인종 문제의 구조화

<겟아웃>은 표면적으로는 스릴러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미국 백인 중산층이 지닌 은밀하고 교묘한 인종 편견이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는 로즈와 교제 중이며, 그녀의 백인 가족을 방문하면서 점점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백인의 호의 뒤에 숨겨진 소유 욕망’에 있습니다. 이들이 흑인을 노골적으로 혐오하거나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운 구조가 됩니다.

로즈의 부모는 겉으로는 진보적이고 지적인 중산층입니다. 그들은 "오바마를 세 번째 임기에도 지지하겠다"고 말하거나, 크리스를 유난히 반기며 ‘열린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흑인을 개별적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다, 기능적 존재로 대상화하는 데 그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종차별은 더 이상 폭력적 언어와 직접적 차별이 아닌, 오히려 '칭찬을 가장한 통제'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골프 클럽에서 만난 백인들은 크리스의 피부색, 체격, 신체 능력에 대해 묻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호기심이나 관심처럼 보이지만, 결국 흑인을 고유한 주체가 아닌 상품화된 이미지로 인식하는 시선입니다. 이는 '탈인간화'라는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인종차별은 단지 미움이 아니라, 타자를 이해 가능한 ‘틀’로 가두고 대상화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식민주의, 우생학, 문화적 전유 등 역사적으로도 이어져 온 서구 백인의 권력 구조를 암시합니다.

‘아서미티지 가문’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이중성과 기만이 어떻게 개인의 신념을 왜곡시키는지를 상징합니다. 이는 <겟아웃>이 단지 인종 간 갈등을 넘어서, 근대 계몽주의가 낳은 위선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까지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철학적 상징으로서의 ‘마음의 감금’

<겟아웃>의 가장 상징적인 연출은 단연 ‘선큰 플레이스(Sunken Place)’입니다. 이 장면은 크리스가 최면 상태에 빠져, 자신의 의식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전환되며 표현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치 화면 속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시각적 효과로 묘사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공포 연출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상태, 즉 자유 의지의 상실을 표현합니다. 철학적으로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생체권력(Biopower)’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권력은 단지 억압하거나 감금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몸과 행동, 생각을 조정하면서 주체를 만들어냅니다. 크리스는 겉으로는 자유롭지만, 실제로는 백인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신체로 전락합니다.

또한, 이 장면은 하이데거의 존재 망각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존재로서 자유롭게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지만, 타인의 시선에 의해 객체화되면 자신을 잃게 됩니다. 선큰 플레이스는 존재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타인의 구조 속에서만 작동하는 ‘존재의 사라짐’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흑인의 신체는 백인의 이데올로기를 수행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 과정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환대’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더 공포스럽습니다. 영화에서의 최면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즉 타자의 지배를 자기 동의로 수용하는 구조를 은유합니다.

즉, <겟아웃>의 공포는 ‘몸이 구속되었다’는 점보다 ‘의식이 자유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이 철학적 장치는 인간의 자유, 정체성, 타자의 지배라는 근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입니다.

리버럴 인종차별의 현대적 실체

영화 <겟아웃>이 특히 날카롭게 조명한 부분은, 전통적인 인종차별이 아닌 진보적 가면을 쓴 차별의 구조입니다. 로즈와 그녀의 가족은 트럼프 지지자도 아니고, 백인 우월주의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겉보기엔 인권을 존중하고, 흑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관심’은 철저히 객체로서의 흑인에 집중된 것이며, 인격적 평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러한 리버럴 인종차별은 오늘날 가장 흔한 인종 차별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PC주의)과도 연결되며, 흑인을 지지하거나 존중한다는 표현이 실제로는 권력 구조 안에서 타자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백인들이 흑인의 신체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심지어 뇌를 이식해 그들의 신체를 이용하려 한다는 설정은, 곧 정체성의 강탈이라는 상징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헤게모니적 타자화’와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백인은 흑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들이 상상한 흑인’에 대한 애정일 뿐이며, 실질적인 교감과 평등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착한 차별’을 만들어내고, 스스로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도 차별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크리스가 마지막에 백인 경찰 차가 다가올 때 보여주는 공포의 눈빛은,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선해도, 이 사회는 당신을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겟아웃>은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작동하는 차별 시스템에 대한 경고입니다. 겉으로는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속에 숨겨진 구조적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 점에서, 이 영화는 철학과 정치학, 사회학이 모두 만나는 작품입니다.

<겟아웃>은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철학적, 사회학적 통찰을 풀어낸 걸작입니다. 단순히 흑인과 백인의 갈등을 넘어서, 차별의 진화된 형태, 그리고 인간 의식과 주체성의 문제까지 조명합니다. 영화 속 설정과 상징, 캐릭터는 모두 철학적 은유로 작용하며, 현대 사회 속 인종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위선과 환대의 경계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타인을 평등하게 보고 있는가?”